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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Netflix] 시간여행자(Travelers)

by 꿈꾸는작은별 2024. 12. 26.

SF 장르를 좋아하시지만, 정말 괜찮은 SF 시리즈물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상당수의 SF 작품들은 가장 기초적인 과학적 상식도 가지고 있지 않은 채로 만들어진 것이 많습니다.  제가 이번에 소개하는 '시간여행자(Travelers)'는 국내 제목만 보면 100% 타임 리프물처럼 보이지만, 영어 제목 'Travelers' 에서 짐작할 수 있듯 단순한 시간 여행 이야기는 아닙니다. 

이 시리즈는 21세기 초 지구에 소행성이 충돌하여 많은 사람이 죽고, 이후 벌어진 기상 이변과 자원을 둘러싼 강대국 간의 전쟁으로 미래 사회가 완전히 황폐화된다는 설정에서 시작합니다. 대부분의 생물은 멸종하고 소수의 인원만이 비상 대피소에서 생활하는 암울한 미래죠.  사람들이 현재 우리가 흔히 먹는 음식을 굉장히 감동하면서 먹고, 현재 시대의 감옥이 미래의 삶보다 만족스럽다고 말하는 걸 보면 미래 상황이 얼마나 나쁜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에서 미래 인류는 인간의 정신을 과거의 지구에 있는 다른 인간에게 덮어씌울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합니다.  마치 컴퓨터를 포맷하고 새로운 운영체제를 업로드하는 것과 비슷하죠.  미래 인류는 요원들을 21세기에 적응할 수 있도록 훈련시켜 보통 5인 1조의 팀을 구성하여 현재의 인간에게 전송합니다. 그리고 이들에게 지구를 살릴 수 있는 여러 가지 임무를 부여하여 절망적인 미래를 바꾸려고 하죠.

 

Travelers (from netflix official)


흥미로운 점은 미래 사회의 '디렉터'라는 AI가 여행자들에게 일방적으로 임무를 지시한다는 것입니다. 여행자들은 대개 아무런 의견 제시 없이 디렉터가 내리는 명령에 절대적으로 따라야 하는 시스템 속에서, 때로는 자살과 다름없는 임무를 수행하기도 하고 평생 감옥에 갇혀 지내는 상황도 기꺼이 감수합니다. 마치 소모품처럼 말이죠. 이러한 설정은 이야기에 어두운 분위기를 더하고, 인류의 미래에 대한 고찰을 하게 만듭니다.  오히려 인류의 미래는 인류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는 파벌이 더 인간적인 모습으로 보일 때가 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적인 사람이 많을수록 또라이도 더 많다는 점이 이 시리즈의 또 다른 매력입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시간여행자(Travelers)'는 브래드 라이트가 제작하고 넷플릭스에서 2016년부터 2018년까지 3개의 시즌으로 방영되었습니다. 각 시즌은 12부작, 12부작, 10부작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흥미진진한 전개와 탄탄한 스토리로 많은 SF 팬들에게 사랑받았습니다. 시간 여행이라는 소재를 통해 인간의 존재, 자유 의지, 그리고 미래에 대한 책임감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어 시청자들에게 깊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줍니다.

https://youtu.be/99LZwZmSoNo?feature=shared

 

 

'시간여행자(Travelers)'의 주인공은 FBI 요원 그랜트 매클라렌과 그가 이끄는 팀원들입니다. FBI 요원이 주인공이라 수사적인 요소가 가미되어 있지만, 범죄 수사 장르라고 하기에는 약한 편입니다.  오히려 시간 여행이라는 독특한 설정을 바탕으로 펼쳐지는 인물들의 갈등과 액션, 그리고 미스터리가 주를 이루죠.

 

매클라렌 팀 본거지(from netflix)



시리즈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주요 인물은 마시 워튼입니다. 본래 도서관 청소부였지만, 여행자가 된 이후에는 도서관 일은 하지 않습니다.  마시 워튼은 시리즈에서 꽤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특히 시리즈 전반에 걸쳐 남녀 간의 사랑을 담당하며 플라토닉 러브적인 요소와 비극적인 서사를 보여줍니다.

 

매클라렌과 마시



흥미로운 점은 타임 리프물에서 자주 등장하는 "미래의 지식을 이용한 돈벌기" 요소도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여행자 팀의 재정을 위해 경마와 로또가 소재로 사용되는데, 이는 극의 긴장감을 더하는 요소로 작용합니다. 또한, 마약 중독과 구할 수 있는 사람을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 때문에 팀 내에서 많은 문제를 발생시키는 필립 피어슨이라는 인물도 등장합니다. 그는 팀 내에서 역사가 역할을 맡고 있으며, 미래에서 얻은 지식을 기반으로 팀의 재정을 책임지지만, 동시에 그의 개인적인 문제들은 팀 전체에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이 작품을 높게 평가하는 가장 큰 이유는 타임 패러독스 문제를 상당 부분 해결했다는 점입니다. 시간여행이라는 주제는 자칫하면 논리적 오류나 불합리한 전개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하지만 시간여행자는 인공지능 ‘디렉터’의 엄격한 원칙과 규정을 통해 이야기의 논리를 탄탄히 유지하며, 시간여행물에서 흔히 등장하는 억지스러운 설정이나 꼬임을 최소화했습니다.

또한 시간여행과 미래 기술을 전능한 도구로 그리지 않고, 제한적인 조건 속에서 인물들이 직접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과정이 매력적으로 묘사됩니다. 이 점은 시리즈의 주요 관전 포인트 중 하나로, 단순한 시간여행물이 아닌 인간 드라마로서의 깊이도 보여줍니다.

여행자들이 따르는 6가지 행동 수칙

시리즈 전반에서 여행자들은 미래에서 주어진 6가지 행동 수칙(Protocol)을 철저히 따라야 합니다. 이 규칙들은 이야기를 흥미롭게 이끌어나가는 동시에 인물 간 갈등과 긴장을 유발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합니다.


1. Protocol 1: 미션이 최우선이다. (The mission comes first.)
디렉터로부터 주어진 임무를 최우선으로 수행해야 합니다. 때로는 위험한 임무에 투입되거나 자살과도 같은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도 발생합니다.

 

2. Protocol 2: 위장을 들통나게 할 일을 절대 하지 마라. (Never jeopardize your cover.)
여행자는 자신이 미래에서 왔다는 사실을 절대 누설해서는 안 됩니다. 여행자들끼리도 미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금지되어 있으며, 이는 정보의 혼란과 행동의 소극화를 방지하기 위함입니다. 미래의 변화가 시시각각 일어나는 만큼, 과거의 행동이 미래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입니다.

 

3. Protocol 3: 명령을 받지 않았다면, 사람을 죽이거나 살리지 말아라. (Don’t take a life; don’t save a life, unless otherwise directed.)
디렉터의 명령 없이 사람의 생명을 구하거나 빼앗아서는 안 됩니다. 이는 나비효과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로, 죽을 운명의 사람을 그냥 지켜봐야 하는 상황은 여행자들에게 큰 죄책감을 안겨줍니다.


4. Protocol 4: 자식을 만들지 마라. (Do not reproduce.)
이미 사망했어야 할 사람이 아이를 가지면 역사에 큰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5. Protocol 5: 명령이 없을 경우, 숙주의 삶을 살아가라. (In the absence of direction, maintain your host’s life.)
여행자는 전송된 후 숙주의 삶을 이어가야 합니다. 정치인은 계속 정치인의 일을 해야 하고, 노숙자라면 그대로 노숙자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여행자들은 숙주의 과거 인간관계와 갈등을 그대로 이어받게 되며, 이러한 점은 시리즈의 주요 드라마적 요소로 작용합니다.


6. Protocol 6: 팀 간 소통은 긴급 상황이 아니면 금지한다. (No inter-team/deep web communication except in extreme emergencies.)
디렉터의 명확한 지시가 없는 경우 다른 팀과의 접촉은 엄격히 금지됩니다. 이를 통해 디렉터는 정보와 명령을 철저히 통제하며 조직을 점조직 형태로 유지합니다.

이 6가지 행동 수칙은 시리즈 전반에 걸쳐 주요 규칙으로 작용하며, 이를 이해하고 감상하면 이야기의 재미를 더 깊이 느낄 수 있습니다. 특히 Protocol 5에 따라 각자 숙주의 삶을 유지해야 한다는 점은 여행자들에게 크고 작은 문제를 안겨줍니다. 숙주의 인간관계를 책임지고 유지해야 하는 상황은 단순한 시간여행물이 간과하기 쉬운 인간 본연의 문제와 갈등을 잘 담아내고 있습니다.

물론 모든 에피소드가 완벽한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시즌 1의 에피소드 5는 의도와 전개가 다소 모호하고 필요성이 느껴지지 않는 부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시리즈는 시간여행 장르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 작품이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타임 리프물의 한계를 뛰어넘는 치밀한 구성과 인간적인 접근은 이 시리즈를 더욱 돋보이게 만듭니다.

 

'시간여행자' 시리즈에서 과거로 정보를 보내는 기술은, 비록 현실에서는 불가능하겠지만, 양자 얽힘이라는 과학적 개념을 흥미롭게 풀어낸 설정이라고 생각됩니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다른 과학 기술들에 대한 제 생각을 이야기해볼게요.

1. 인간의 뇌에 정보를 덮어쓰는 기술
인간의 뇌는 약 860억 개의 뉴런과 1조 개의 시냅스로 이루어진 복잡한 기관입니다. 단순히 정보를 덮어쓴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의식이 그대로 복제될 수는 없겠죠. 뉴런과 시냅스는 개인의 성장 과정과 경험에 따라 독특한 방식으로 연결됩니다. 마치 인텔 CPU 기반 프로그램을 ARM CPU에서 바로 실행할 수 없는 것처럼, 다른 사람의 뇌에 의식을 이식하는 것은 엄청난 난관에 부딪힐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뇌 과학과 컴퓨터 기술의 발전 속도를 고려하면, 언젠가는 뇌 정보를 읽고 해석하는 기술이 개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윤리적인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일 것입니다.

2. 양자 컴퓨터
현재 양자 컴퓨터는 아직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지만, 많은 과학자들이 그 잠재력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머지않아 양자 컴퓨터가 상용화되고 인공지능 기술과 결합한다면,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혁신이 일어날 수도 있겠죠.

 

google quantum computer (from google quantum AI)



3. 나노 입자를 이용한 의료 기술
나노 입자를 활용한 의료 기술은 이미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으며, 일부 분야에서는 실제 치료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노봇으로 복잡한 의료 행위를 하는 것은 아직 먼 미래의 이야기일 겁니다.
하지만 RNA, DNA 기술의 발전은 인공 박테리아나 바이러스를 이용한 질병 치료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고 생각합니다. 코로나19 백신 개발에서 mRNA 기술이 중요한 역할을 했듯, 미래에는 인공 생명체를 이용하여 질병을 정복하는 시대가 올지도 모릅니다.

 

이처럼 '시간여행자'는 현재 과학 기술의 한계와 가능성을 동시에 보여주면서, 미래 사회에 대한 흥미로운 질문을 던지는 작품입니다. 비록 드라마 속 모든 기술이 현실이 되지는 않더라도, 과학 기술 발전에 대한 상상력을 자극하고, 그에 따른 윤리적 문제까지 생각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제 주관적인 평가는 ★★★★☆ 입니다.